조상을 잘 두어 태어나면서부터 잘 사는 사람이 있다. 그래서 가정환경이 나쁜 사람들은 출발점이 달라서 이들과 경쟁하기 어렵다고 한다. 그래서 억울하다는 말일게다. 그러나 가장 공평한 것이 있다. 그것은 각자에게 주어진 시간이다. 훌륭한 조상을 둔 사람이나 그렇지 못한 사람이나 똑같다. 이 똑같이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서 인생은 달라진다.
전에 우리 사회에 7공자라는 사람들이 있었다. 아버지를 잘 둔 덕택에 멋대로 돈을 쓰고 하고 싶은 대로 하였던 사람들이다. 그런데, 그들의 말로는 그대지 잘 끝난 것 같지는 않다. 그러니 조상을 잘 둔 것이 바로 자기의 인생을 행복하게 하는 절대 조건은 아니다.
역사에도 이러한 일은 많다. 그 가운데 하나가 동진(東晋)을 대신하여 송(宋)왕조를 세웠던 유유의 아들 유의부(劉義符)다. 그는 아버지 유유의 뒤를 이어 황제가 되었는데 이때 나이가 19세였으니, 어리다면 어리다고 하겠지만 제대로 된 사람이라면 충분히 황제의 자리를 지킬 수가 있는 나이였다. 그보다 더 어린 나이에 황제가 되어도 잘 지켜 나간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유의부는 그렇지 못하였다. 아버지인 황제가 죽어서 거상(居喪) 기간 중에도 무례한 짓을 했다. 뿐만 아니었다. 스스로 황제인데도 불구하고 좌우에 있는 사람들과 격의 없이 가까이 하였고, 노는데도 절도가 없었다. 아마도 자기를 구속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인 아버지 유유(劉裕)가 죽었기 때문에 자유를 만끽하겠다는 것인지도 모른다.
물론 주변에 이를 충고하는 신하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나이가 많아 벼슬에서 물러난 범태라는 사람이 편지를 써서 다른 사람이 모르게 황제 유의부에게 전했다. 간곡하게 황제가 하는 일을 거론하며 잘못을 지적하고 마지막으로 방안을 제시했다. ‘폐하께서 보위에 오르시어 정사를 재상에게 맡기고 실로 고종(高宗)이 양암(諒闇)하였던 미덕을 같이 하셨으나, 바꾸어 소인배와 허물없이 가까이하시니 사직을 위한 지극한 계책과 세상을 다스리는 길이 아닐까 두렵습니다.’정치는 재상에게 맡기고 아들로서 아버지에 대한 예절을 지키라는 말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충고를 들을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유의부는 궁궐 안에 있는 화림원(華林園)에 점포를 늘어놓고 친히 물건을 팔았고, 또 좌우의 사람들과 더불어 배를 끄는 것을 낙으로 삼고 천연지(天淵池)에서 놀이를 하고 용주(龍舟)에 가서 잠을 잤다. 궁궐 안에서 황제가 점포를 차려 놓고 장사를 한고 뱃놀이를 하다가 그 배에서 잠을 자는 해괴한 행동을 계속한 것이다.
이러한 상태라면 아무리 황제가 높은 지위에 있지만 들고 일어나는 사람이 없을 수가 없었다. 도읍에 있던 영군(領軍)장군 사회(謝晦)가 지방에서 군사를 갖고 있던 단도제와 왕홍(王弘)을 경사로 오라고 하여 힘을 합쳐서 황제 유의부를 내쫓았다. 2년간 황제 노릇을 하던 유의부는 쫓겨났고, 왕으로 강등되었다가 죽임을 당한다. 황제 자리를 물려받았지만 제명에 죽지도 못한 것이다. 오히려 황제 자리를 물려받지나 않았다면 혹 천수(天壽)도 누릴 수 있었을 테지만....
이 사실을 보면서 역사가 배야자는 그 원인을 교육에서 찾았다. 원래 인군(人君)이 아들을 양육할 때, 말을 할 수 있으면 스승이 그에게 문장을 가르쳤고, 걸을 수 있으면 스승이 그에게 예(禮)를 도왔다고 하면서 송<유송> 왕조에서는 왕자를 노복과 비첩이나 심부름하는 사람을 가까이 하게 했다는 것이다. 그러니 제 자리를 지킬 수 없었다고 결론 내렸다.
요즈음 어른들은 30년 전에 먹는 문제가 제일 큰 일로 생각했던 경험을 갖고 있어서 그런지 아이들에게 해달라는 대로 다 해주려 한다. 혹 7공자 못지않게 기르는 건 아닌지? 다시 한 번 자손들을 잘 가르치고 있는 생각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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