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끊임없이 바뀐다. 만약에 변하는 것이 없다면 발전도 없을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모두가 새롭게 바뀌는 것에 희망을 두고 있다. 그런데 유독 왕조가 바뀌게 되면 망해 버린 옛 왕조에 대하여 연민의 마음을 품는 사람이 많다. 아마도 그 화려했던 옛날과 현재를 비교하면서 망해버린 사람에 대한 정리(情理) 때문이 아닐까?
삼국을 통일한 진(晉)은 북쪽으로 오호(五胡)에게 내주고 남쪽으로 쫓겨 와서 동진(東晉)으로 왕조를 재건하였지만 황실을 이를 제대로 추스를 수 있는 능력이 없었다. 그래서 호족들이 군사력을 가지고 황실에 맞서서 독립하여 스스로 황제에 오르는 일도 있었다. 환현(桓玄)의 환초(桓楚)다.
그러나 이러한 환현을 쳐부순 유유가 대신 등장하였다. 그는 북벌을 통하여 장안까지 쳐 올라갔고, 또 환현을 몰아냈다. 환현이 물러갔다고 해도 다시 권력이 동진의 황제에게로 갈 수 없는 것이 역사다. 그래서 힘을 가진 유유에게로 갔다. 그러니까 권력이 동진 황실의 사마씨에게서 환씨로 다시 유씨에게로 옮겨 간 것이다. 아마도 이것이 힘 있는 사람이 중심이 될 수밖에 없는 역사의 순리일 것이다.
유유는 이미 환현을 몰아내면서 대의(大義)를 내세웠으므로 동진의 최고의 공신이 되어 황제나 누릴 수 있는 왕작(王爵)을 받아 송왕이 되었고 다시 구석(九錫)을 받았다. 이제 올라갈 곳은 황제가 되거나 아니면 떨어지는 것 밖에 없는 위치가 되었다. 그는 이러한 역사의 순리를 잘 알았다. 백척간두(百尺竿頭)에서 진일보(進一步)하는 결단이 필요했다.
드디어 송왕 유유는 여러 사람과 술자리를 마련하고, 짐짓 신세 한탄을 했다. ‘내가 이처럼 아주 높아졌는데, 만물은 꽉 차는 것을 꺼리니 오래도록 태평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지금 작위를 도로 돌려드리고 경사로 돌아가서 노후를 보내려고 한다.’그 많은 권력을 내 놓고 조용히 노후를 보내야겠다는 말이다.
이 말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보통 사람들은 곧이곧대로 받아들여서 정말로 훌륭한 생각을 하였다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했다. 그러나 이것을 반대로 해석한 사람이 있었다. 부량(傅亮)이었다. 그는 술자리가 파한 다음에 다시 돌아와서 유유에게 황제가 있는 경사로 가겠다고 하면서 허락을 받았다. 어디에도 현 동진 황제를 내쫓으러 간다는 말은 없었다. 마침 장성(長星)이 밤하늘을 가로 질러 갔다. 장성이 나타나는 것은 옛 것을 청산하고 새 것이 들어선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으로 알려진 터라 부량을 회심의 미소를 뗬다.
유유와 구체적인 말을 한 일은 없어도 이미 뜻은 통했던 것. 부량은 경사(京師)로 가서 유유를 경사로 불러들이라고 황제에게 권고했다. 이 말을 들은 동진의 마지막 황제 공제(恭帝)는 바로 알아들었다. 자기의 시대, 동진의 운명이 다 한 것을 안 것이다. 바로 유유에게 경사로 들어오라고 연락했다. 그리고 “환현의 때 진씨(晉氏)는 이미 천하를 갖지 못하였는데 다시 유공(劉公)이 연장하게 되어 곧 20년이 되니, 오늘의 일을 본래 달갑게 여기는 바이다.”라고 하면서 유유에게 선양하였다. 유유 때문에 20년 동안이나 더 황제 노릇을 할 수 있었다는 말이다.
공제가 궁궐에서 물러가는 모습을 보면서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있었다. 인간의 정리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정리일 뿐, 그 정리로 역사의 도도한 흐름을 막을 수는 없는 것이었다. 이러한 작은 정리에 얽매지 않은 사람은 새로 황제에 오른 유유나 이를 중간에서 다리를 놓은 부량이나, 그리고 물러나는 공제나 모두 역사의 흐름을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지나 온 세월을 거슬러 본다면 오늘에 나타나는 현실은 당연한 것인 것이다. 마찬 가지로 오늘 하는 일은 내일에 결과로 나타나는 것도 분명한 것이다. 어찌 오늘을 헛되이 보낼 수 없는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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