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심하면 일을 맡기지 말고 일을 맡겼다면 의심하지 말라’는 명언이 있다. 이것은 인사(人事)에 있어서 철칙같이 사용되는 말이고, 이 원칙을 어겼을 때에는 예상할 수 없는 문제가 발생하는 일을 종종 본다. 이러한 예가 바로 위진남북조 시대에 있었다.
북쪽을 오호에게 빼앗기고 남쪽으로 쫓겨 내려왔던 동진(東晉)의 군대가 오래간만에 북쪽으로 쳐 올라가서 옛날 왕조의 도읍이었던 장안(長安)을 점령하였다. 이를 주도한 사람은 동진의 유유(劉裕)였다. 그는 이미 동진에서 성장하여 동진에서 전권(全權)을 쥐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유유는 장안에 오래 머물러 있을 수가 없었다. 그가 일선에 오래 머무르게 되면 동진의 조정에서 그를 제거하는 움직임이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이때에 그가 조정에 믿는 사람을 남겨 두었었는데, 이 사람이 죽었다는 소식까지 온 마당에 더 이상 장안에 머무를 수가 없었다.
조정으로 돌아가야 하는 유유의 입장에서는 모처럼 장악한 장안을 포기할 수 없는 일이었으니 당연히 누군가에게 장안을 맡겨야 되었다. 이 교두보를 계속 유지할 수만 있다면 동진이 다시 고토(故土)를 회복할 수 있는 교두보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유유는 중대한 인사 조치를 해야 했다.
그는 그를 도와서 장안을 함락시키는데, 큰 공로를 세운 사람들로 세울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에게는 원래 장안 출신인 왕진악(王鎭惡)이란 사람이 있었다. 용감하고 지혜가 있어서 장안을 탈환하는데 큰 공을 세웠던 사람이다. 반면에 유유와 함께 북쪽으로 갈 때에 함께 데리고 간 심전자(沈田子)란 사람이 있었다.
이 두 사람은 유유가 장안에 있는 한 겉으로 충돌할 수 없었지만 은연중에 서로 공로 다툼을 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공로를 가지고 따져 본다면 북쪽 출신의 왕진악의 공로가 남쪽 출신을 심전자보다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므로 유유는 왕진악에게 큰 책임을 맡기면서 자기의 아들 11살짜리 유의진을 최고 책임자로 두었다.
그러자 유유를 따라온 심전자 같은 사람들은 떠나는 유유에게 “왕진악의 집이 관중(關中)에 있으니 보장하여 믿을 수가 없습니다.”라고 반대 의견을 냈다. 왕진악은 북쪽 출신이니 그가 유유의 말을 좇을지 믿을 수가 없다는 말이었다. 그러나 능력으로 본다면 왕진악에게 일을 맡길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 유유는 “지금 경의 문무(文武)장사와 날쌘 병사 1만 명을 남겨놓을 것이니 그가 만일 좋지 못한 일을 하고자 하여도 스스로 멸망하기에 딱 알맞을 뿐이오. 다시는 여러 말을 하지 마시오.”라고 하며 심전자의 입을 막았다.
유유는 만약에 왕진악이 다른 생각을 가는다고 해도 남쪽에서 함께 온 군사를 1만 명이나 남겨 놓을 것이니 왕진악이 다른 생각을 갖지 못할 것이라는 말이다. 유유는 왕진악에게 일을 맡기면서 한 편으로는 그를 견제할 세력을 남겨 둔 것이다.
그러나 유유가 조정으로 돌아 간 다음에 심전자의 무리들은 왕진악으로 꾀어내어 죽인다. 물론 왕진악이 남쪽에서 올라 온 사람들을 다 죽이려고 한다는 이유를 가지고 조치한 것이다. 자중지 난이었다. 그러나 왕진악을 죽인 결과 동진의 세력은 장안에서 쫓겨났다. 유유는 모처럼 만의 기회를 송두리째 날려 버린 것이다.
이를 보고 사마광은 100년 동안 노략질 당한 천리의 땅을 잃은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100년 만에 얻은 기회를 한 순간 인사조치 하나 잘 못으로 놓진 사건이다. 왕진악을 믿지 못했다면 맡기지 말아야 했던 일이었다. 유유는 한 순간의 실수로 100년 만에 찾아 온 기회를 잃은 것이다. 우리 주변에도 이러한 일이 비일비재한 것같이 보인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