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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7화> 후진의 멸망, 외환인가 내우인가?

위진시대에 북조를 일시 통일하였던 전진(前秦)의 부견(苻堅)이 실패하자 서부지역에서 요장(姚萇)이 다시 진(秦)을 세웠다. 역사에서는 보통 이를 후진(後秦)이라고 하는데, 그 후에 그의 아들 요흥(姚興)이 뒤를 이었다가 죽고 요홍(姚泓)이 뒤를 이었다.
요홍은 후진의 황제가 되는데도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요홍의 아버지 요흥(姚興)은 오랫동안 병을 앓고 있었는데, 약을 먹고 발작을 일으켰다. 그렇다면 당연히 그 아들들은 아버지 있는 곳으로 달려 와야 했지만 요흥의 셋째 아들 요필이 몸이 아프다고 하면서 조현하지 않았다.
그리고 대신 집에서 병사를 모았다. 아버지 요흥이 발작을 일으켰으니 곧 죽을 것으로 생각하고 그렇게 되면 군사를 일으켜서 형인 태자 요홍을 제거하고 황제의 자리를 차지하려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이는 후진의 후계질서를 어지럽히는 중대한 문제였다. 이 소식을 들은 요흥은 화가 나서 자기 아들 요필을 보좌하는 당성(唐盛)과 손현(孫玄) 등을 잡아들여 죽였고 아들이지만 요필도 죽이려고 하였다. 그러나 태자인 요홍은 간절하게 동생 요필을 위하여 비는 바람에 요필은 죽지 않았다. 태자 요홍은 착한 형인 셈이었고 요흥이 죽자 황제에 올랐다.
그런데 이번에는 남쪽에 있는 동진(東晉)에서 옛날 도읍지인 낙양을 빼앗겠다고 유유가 북벌을 벌였다. 유유는 후에 동진을 무너트리고 송(宋)을 건국할 사람이었다. 그러한 유유는 진(晉)의 옛 도읍을 빼앗는 공로를 가지고 동진에서 확실한 권력 기반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그 공세가 날카로울 수밖에 없었다.
후진(後秦)에서는 동진의 북상을 막기 위하여 온 국력을 기울여서 대비해야 했기에 필요한 군사를 동원하여 이를 막도록 하였다, 뿐만 아니라 이들을 지원하기 위하여 산서지역에 있던 황제 요홍의 셋째 동생 요의(姚懿)에게 남쪽으로 이동하여 동진의 군사를 막는 일을 응원하게 하였다. 요홍으로서는 최선의 방법을 강구한 것이다.
그런데 먼저 낙양 지역에 가 있던 요홍의 다른 동생 요광(姚洸)은 충성스런 영삭장군 조현의 말을 듣지 않고 도리어 동진세력과 뒤로 연락하는 사람들의 말을 듣다가 실패하여 동진에 항복하였다. 이제 남은 것은 요의가 목숨을 걸고 자기 조국과 형인 황제를 위하여 맡은 일을 다 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그런데 조국 후진이 위기에 처한 기회를 이용하여 권력을 잡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요의 밑에서 군사에 관한 일을 맡고 있는 사마(司馬) 손창(孫暢)이 방향을 바꾸어 황제가 있는 장안을 향하여 가서 황제를 돕고 있는 숙부 요소(姚紹)를 죽이고 황제 요홍도 죽이고 대신 황제가 되라고 권고하였던 것에 넘어간 것이다.
이에 귀가 솔깃해 진 요의는 드디어 손창의 말에 따라서 군사를 일으켰다. 물론 이때에 반란을 일으켜서 안 된다고 간언(諫言)한 좌상시(左常侍) 장창(張敞)과 시랑(侍郞) 좌아(左雅)를 매질하여 죽인 다음이었다. 그리고 여러 곳에 편지를 보내어 자기가 군사를 일으켰다. 이제 동진의 침략을 막기에 앞서서 후진 자체 안에서 일어난 반란을 먼저 제압하지 않으면 안 될 처지가 되었다. 그야 말로 내우외환(內憂外患)이었다.
후진의 입장에서는 천우신조(天佑神助)했는지 많은 사람들이 요의를 공격하는 일에 가담했다. 결국 요의를 꼬드긴 손창은 잡혀 죽었고, 요의도 붙잡혔다. 일단의 위기를 넘긴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내부의 걱정거리를 가진 후진이 왕조를 더 이상 오래 유지하기 어려웠다. 요홍이 등극한지 2년이 되어 후진은 동진의 역사에서 사라진다. 후진의 멸망은 외환인 동진의 침략 때문인가? 아니면 형제간의 다툼 때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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