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위에서 호태후 말년에 정치가 혼란하게 되었고, 동부지역에서 고환이 원선견을 황제로 세우자 서쪽에서는 우문태(宇文泰)가 황제를 세워서 북위는 동위와 서위로 갈라졌다. 이때에 우문태에 의하여 세워진 황제가 원보거(元寶炬)였다.
그는 북위 시절 선무제(宣武帝) 때에 정치적 다툼 속에서 유폐되는 어려움을 당하기도 했으나, 선무제가 죽어서 자유를 얻었지만 아버지를 여의고 삼촌이 원역(元懌)의 손에 길러졌다. 530년에 남양왕이 되었다가 534년에 효무제가 입관하면서 우문태에게 의지하였다. 그리고 그 다음 해에 서위의 황제가 된 사람이다. 따지고 보면 서위를 개국한 사람이지만 우문태 등 관롱(關隴) 집단에 업혀서 황제가 되었으니 보통의 개국군주가 자기의 힘을 가지고 나라를 세운 것과는 사뭇 다르다.
그러나 일단 황제가 된 이상 그가 져야 할 책임은 있는 것이다. 이 시기에 서위는 동쪽으로는 북위에서 갈라진 동위가 있었고, 북쪽으로는 유연(柔然)이 있었으며, 서쪽으로는 토욕혼(土谷渾)이 있고, 남쪽에는 남조 양(梁)이 있었으니, 사방에 경쟁자를 둔 셈이었다.
그런데 그가 황제가 되는 해부터 유연의 주군인 아나괴(阿那瓌)가 자주 남쪽으로 침략하여 내려왔다. 서위로서는 동위와 정통성 경쟁을 벌이고 있는 판이어서 이 유연 문제를 풀어야 했다. 그 길은 유연과 우호관계를 맺는 것인데, 말로만 우호관계를 맺는 다고 할 수 없어서 보통은 통혼하는 것으로 이를 담보했다. 말하자면 정략결혼이었다.
이리하여 원보거는 대통 4년(538)에 아나괴의 장녀를 받아들여 황후로 삼아야 했다. 그러나 그에게는 이미 황후 을불(乙弗)씨가 있었으니, 을불씨를 황후에서 내쳐야 했다. 하는 수 없이 을불씨에게 머리를 깎고 비구니가 되게 하여 별궁에 살라고 하였다. 이리 조치하고 아나괴의 딸을 맞았는데, 아니괴의 딸 입장에서는 전 황후가 같은 궁궐 안에 산다는 것이 못내 마땅치가 않았고 시기가 많았다.
원보거는 하는 수 없이 을불씨가 낳은 아들 무도왕(武都王) 원무(元戊)를 태주(泰州, 감숙성 천수시) 자사로 삼고, 아들과 함께 태주에 가 살게 하였다. 그러나 을불씨와 헤어진 것은 국가의 정책상 하는 수 없어서 그리한 것일 뿐 언젠가는 다시 그녀를 황후로 복귀시킬 심산이었다. 그리하여 몰래 을불씨에게 깎았던 머리를 기르도록 명령까지 해 두었다.
그러나 역사는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 의외의 사건이 터진 것이다. 유연에서 황하를 건너서 다시 쳐 내려왔다. 아나괴의 딸을 황후로 삼았는데, 황제 원보거가 전 황후를 완전히 끊어버리지 못한 것 때문이란 소문이 돌았다. 원보거는 난처하였다. 원보거는 아무리 딸을 위한다고 하여도 100대군을 일으키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였지만 확인할 길은 없었다.
유연의 침략을 막아야하는 장수들 입장에서는 일어나지 않을 전쟁을 원보거가 전황후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데 있다고 믿을 것이니, 원보거는 무엇인가 조치를 취해야 했다. 그 확실한 길은 전 황후에게 죽음을 내리는 것이었다.
을불씨도 잘 아닌 환관인 중상시 조총(曹寵)을 파견하여 손수 쓴 칙서를 가지고 가서 문후에게 자진(自盡)할 것을 명령하였다. 을불씨가 칙서를 받고 울면서 조총에게 말하였다. “바라건대 지존께서는 천만세를 누리시고 천하가 강녕(康寧)하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소.”마침내 자살하였는데, 그녀를 맥적애(麥積崖, 천수시 동남쪽 50리)를 뚫어서 그곳에 장사 지내고‘적릉(寂陵)’이라고 불렀다.
전황후에 대하여 시기하였던 아나괴의 딸은 그 때 회임하고 있었는데, 아기를 낳다가 또 죽었다. 이 때 16살이었다.
정략에 이용되어 황후에서 쫓겨난 을불씨나 16살에 51살이나 된 원보거에게 시집와야 했던 아나괴의 딸이나 희생양이 되긴 마찬가지였다. 물론 원보거도 서위의 안녕 때문에 원치 않는 새장가를 들어야했던 것도 따지고 보면 정치의 희생자이긴 마찬가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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