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치통감 이야기
북위 시대의 고환은 최고의 권력자였다. 그는 북위에서 6진(鎭)의 반란을 진압하고 군권을 장악한 사람이다. 그 후에 북위의 권력자 이주(爾朱)씨를 토벌하면서 완전히 북위의 권력을 장악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효무제 원수(元修)를 세웠지만 원수가 고환의 세력을 꺾으려다 실패하고 장안으로 달아나는 바람에 다시 원선견(元善見)을 황제로 세웠으니 그 권력을 짐작할 만 한 것이다.
이러한 절대적 권위를 가진 고환의 첩이 고환이 밖에 나가 있는 틈에 그의 장남인 고징과 통정하였고, 그것이 발각되었다. 고환으로서는 밝히고 싶지 않은 추문이었지만 이 사실은 고환이 돌아오자마자 밖으로 드러났다. 한 명의 비녀(婢女)가 이 사실을 알렸고 두 명의 비녀가 입증까지 했으니, 고징은 부인하기 어렵게 되었다.
고환은 고징에게 100대의 장(仗)을 쳐서 유폐시키고, 그를 낳은 생모 누비(婁妃)도 만날 수 없게 하였다. 이제 고징은 더 이상 고환에게 장자로서의 대우를 받을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리고 고환은 북위의 황제인 원수가 장안으로 도망하면서 낙양에 남겨진 황후 이주씨(爾朱氏)를 받아들이고 아들 고유(高浟)를 낳았는데, 상황이 이렇게 되자 고유를 후계자로 세우려고 하였다. 전 황후에게서 난 아들을 후계로 삼으려고 한 것이다.
코너에 몰린 아들 고징으로서는 이렇게 위기에 처하게 되자 아버지 고환의 후계자가 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것을 알고 사마자여(司馬子如)에게 도와달라고 부탁하였다. 사마자여는 고환이 이주씨의 아들을 후계자로 세운다면 고환의 비인 누씨 또한 그 지위가 흔들리게 된다는 점을 들어서 누비와 고환을 설득하였다. 고징하나만 처벌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누비까지 처벌하는 결과를 가져 온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마자여는 자기 아들 사마소난도 자기의 첩과 통정하였는데 이를 덮어 버렸다고 말하면서 첩이란 정실부인과 다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사실 정비인 누씨는 고환이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에 지극 정성으로 고환을 돌보았었다. 이를 두고 사마상여는“왕과 머리카락을 매어 부인이 되었고, 항상 부모의 가재(家財)를 가지고 왕을 받들었으며, 왕께서 회삭(懷朔, 하남성 심양시)에서 장형(杖刑)의 형벌을 받아 등에는 온전한 피부가 없었지만, 왕비가 낮과 밤으로 받들어 모셨고, 뒤에 갈적(葛賊)을 피하여 함께 병주(幷州, 산서성 태원시)로 도주하였으나 빈곤해지자, 왕비는 마시(馬矢, 말똥)로 불을 지폈고, 스스로 가죽신을 지었으니, 그 은의(恩義)를 어찌 잊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설득했다. 뿐만 아니었다. 고징을 흔들어 놓으면 고환을 위하여 공훈을 세웠던 누씨 친정의 오라버니인 누(婁)영군장군의 지위도 흔들릴 수밖에 없는 것도 사마자여는 말하였다. 고징 하나를 처벌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결국 정치적으로 어려워지게 된다는 것이다.
이제 고징은 감정대로 자기의 후계로 이주씨의 소생이냐, 첩고 통정한 누비의 소생 고징으로 할 것이냐를 결정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런데 이주씨는 고씨 집안에서 토벌한 집안이고, 누씨는 자기를 도와 준 집안이었다. 결국 이주씨 쪽을 버리고 누씨 쪽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려면 고징과 고환의 첩이 통정하였다는 사실이 거짓말로 만들어야 했다. 고환은 그 책임을 사마자여에게 맡겼다.
먼저 사마자여는 고징을 나무랐다. “사나이가 무슨 생각으로 위엄을 두려워하여 스스로 거짓말을 하는 것이오?”이 말은 고징은 고환의 비첩과 통정하지 않았는데, 두 비녀가 고발하자 아버지의 위엄에 눌려서 거짓으로 통정했다고 자백한 것을 나무란 것이다. 통정이 사실이 아닌데, 아버지가 무서워서 거짓 자백을 했다는 말이었다. 이로써 고징은 허물을 벗었다.
다음으로 두 비녀(婢女)에게 고징과 고환의 첩이 통정했다고 증언한 것이 사실이 아니라고 말하게 한 것이다. 이쯤 되면 처음으로 이 사실을 고발한 사람이 문제였다. 사마자여는 고발한 사람을 위협하여 스스로 목을 매어 죽게 하고, 마침내 고환에게 계문을 올렸다. “과연 헛된 말이었습니다.”꼬리 자르기를 정확하게 한 것이다. 고환이 크게 기뻐하며 누비(婁妃)와 고징을 불렀다.
고환의 부름을 받은 누비는 멀리서 고환을 보고 한 걸음 걷고 한 번 머리를 조아리고 또 한 걸음 걷고 또 머리를 조아렸다. 고징 또한 절을 올리며 또 나아가니 아버지와 아들, 남편과 아내가 서로 눈물을 흘렸고, 다시 처음과 같이 되었다. 고환이 술자리를 마련하고 말하였다. “우리 부자관계를 온전하게 한 사람은 사마자여이도다!”사마자여에게 황금 130근을 하사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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