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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4화> 모자가 해졌다하여 발싸개로 쓰겠는가?

위진남북조 남조의 제(齊) 나라 황제인 동혼후는 상식으로는 판단하기 어려운 행동을 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에게 반기를 들려는 세력도 또한 적지 않았다. 맨 처음에 진현달(陳顯達)이 군사를 일으켰다가 한번 싸우고 곧바로 패하였고, 그 다음으로 최혜경(崔慧景)은 군사를 일으켜서 성을 에워쌌다가 곧 도망하였다.
이리되니 동혼후는 반란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지 그의 파격적인 행동을 고치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다시 소연(蕭淵)이 군사를 일으켰다. 소연의 군대는 좀 달랐다. 그러나 동혼후는 기껏해야 후당에 신상(神像)을 만들어 놓고 무당에게 기도하게 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리고 당시 성 안에는 실제로 갑옷 입은 병사들이 오히려 7만 명이었는데 이들을 제대로 훈련시켜 막을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전투에는 쓸모없는 황문(黃門)·도칙(刀勅) 그리고 궁인과 더불어 화광전(華光殿) 앞에서 전투를 연습하며 거짓으로 창에 찔린 모양을 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널판지롤 들고 가게 하였다. 마치 놀이와 같은 것이지만 이것은 액막이 비방조로 한 짓이었다.
그래도 소연의 군대는 도읍인 건강을 압박하였다. 결국 동혼후는 자기의 심복인 여법진에게 군사를 이끌고 나가 싸우게 하였다. 그러나 제대로 된 지휘를 할 수 없어서 패하였다. 그러자 군사들은 동요하였고, 여법진은 병사들을 돈을 주면서 붙잡으려고 하여 황제인 동혼후에게 돈을 좀 달라고 하였다. 그런데 동혼후는“역적들이 오면 오로지 나만을 잡으려 할 것인가? 어찌 내게 와서 재물을 요구하는가!󰡓라고 하면서 돈을 내지 않았다. 또 전장에서 쓰려고 후당에 쌓여있는 수백 개의 나무 조각을 가져다가 성을 막는데 쓰려고 하였지만, 동혼후는 이것조차 내 주지 않았다. 이것을 남겨놓았다가 궁궐을 짓는데 쓰려는 것이었다. 동혼후의 태도는 반란이 성공하면 황제인 자기만 죽는 것이 아니고 권력을 쥔 사람이 전부 죽은 것이므로 너희들이 알아서 하라는 투였다.
이러하니 반란을 막아야 하는 무리들이 모두 황제를 원망하며 게으름을 피우고 힘을 다하지 않았다. 그리고 밖에서 포위한 지가 이미 오래되자 성 안에서는 모두 일찍이 도망할 것을 생각하였다. 다만 감히 먼저 출발하지 않는 것뿐이었으니, 기회만 되면 도망갈 기세였다. 아무도 동혼후를 위하여 일할 생각을 갖지 않게 된 것이다. 그래서 결국 동혼후는 옆에 있는 사람에게 목이 잘려 죽었다.
이제 남은 관료들은 소연에게 항복하는 길 밖에 없다고 판단하였다. 그래서 장직이 상서좌복야 왕량(王亮) 등을 불러서 궁전 앞 서쪽에 있는 종루 아래에 백관들 차례대로 늘어서 앉히고 소연에게 항복하는 전소(牋疏)에 서명하도록 하고 누런 기름을 먹인 비단으로 동혼후의 머리를 싸 가지고 국자박사 범운(范雲) 등을 파견하여 석두(石頭, 건강성 서북쪽)로 보내어 가게 하였다.
이때에 좌위(左衛)장군 왕지(王志)가 탄식하였다. “관(冠)이 비록 닳아서 해졌다고 하여서 어찌 발에 쓰게 할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비록 동혼후는 잘 못이 많고, 닳아서 해진 관이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함부로 천시할 수는 없다는 뜻이었다. 새로 등장하는 소연의 권력 앞에서 저항한 것이다. 그리고 정원에 있는 나무의 낙엽을 모아서 두 손으로 비벼서 이것을 옷에다 묻혀 정신이 없는 것처럼 가짜로 꾸미며 서명하지 않았다.
얼마 후에 소연이 권력자로 등장하였다. 그리고 자기에게 가지고 온 항복문서를 보니 거기에는 왕지의 서명이 빠져 있었다. 자기에게 항복하기를 거절한 사람이니 잡아다가 죽일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소연은 오히려 마음속으로 그를 칭찬하였다. 모자를 신발로 쓰지 않겠다는 사람은 믿을만한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급해도 모자를 신발로 삼을 수 없다는 것이 선비의 꼿꼿한 지조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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