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진남북조 시대는 유교적 속박을 벗어 던진 시대였다. 한나라 때에 통치자들은 유교의 신분론을 이념으로 삼아 사회통합을 시도하여서 사람은 각기 사회적, 정치적 신분에 따라서 예의를 지키도록 하였다. 그러므로 이때에 가장 중요한 것이 어떤 신분을 타고 났느냐가 중요하였다. 좋은 신분으로 태어난 사람은 일생동안 좋은 대우를 받았던 반면에 그렇지 못한 사람은 비록 똑똑하고 현명하다고 하여도 더 좋은 대우를 받기 어려웠다. 사회적으로는 커다란 속박이었다.
그러던 것이 후한 말에 이를 참다못하여 황건의 무리가 군사를 일으켰고, 한나라 시대 400년간 지탱하던 유교적 신분질서는 무너져 내리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삼국시대를 거치면서 계속되는 새로운 질서를 잡기 까지는 오랜 기간 자유경쟁의 분위기가 지속되었다. 이제 한나라 시대 같은 가치개념도 형식도 무너졌고, 어떤 것도 나를 얽어 맬 수 없다는 자유분방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그러한 분위기를 가장 고상하게 표현한 것이 이른 바 죽림칠현(竹林七賢)의 등장이다. 이들 가운데 어떤 사람은 부모상을 만나서 마음에도 없이 다른 사람 눈치 때문에 슬픈 척하면서 통곡하는 것은 거짓이고 허위이니 이러한 형식은 깨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그 중 사람은 어머니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도 바로 분상(奔喪)하지 않고 친구와 두던 바둑을 끝까지 마치었다. 바둑을 마치지 않고 집으로 달려간다고 한들 어머니가 살아날 것도 아닌데, 두던 바둑을 그만 둘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그뿐이 아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평소대로 술 한 동이를 마시었다. 모두 그 동안 부모가 돌아가시면, 즉시 분상해야 하고, 고기를 먹거나 술을 마시지도 말라는 유교의 상례형식을 깨버린 것이다.
그러나 그가 어머니의 영전(靈前)에서 곡(哭)을 할 때에는 얼마나 애통하게 울었는지 눈에서 피눈물이 났다. 이러한 그의 모습을 본 사람들은 비록 전해 오는 유교적 규범을 지키지는 않았지만 오히려 형식만 지키고 실질이 없이 겉도는 곡(哭)을 하는 것보다 훨씬 사람들에게 감동을 안겨 주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형식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알맹이가 중요한 것이라고 하면서 형식을 깨는 일을 서슴없이 진행하였다. 마치 형식만 깨면 알맹이가 드러날 것처럼.
이러한 상황은 위진시대 400년간 거의 전 시대에 걸쳐서 나타난다. 그 가운데 남조 제(齊)에서는 울림왕이 이러한 짓을 하다가 이를 참다못한 명제(明帝) 소난(蕭鸞)에게 쫓겨났다. 그렇다면 명제는 이를 바로 잡아야 했지만 그 역시 무도하다고 울림왕을 쫓아내긴 했지만 그것은 정권을 얻기 위하여 이를 빌미로 삼았을 뿐 바로 잡은 생각은 아예 없었다.
그래서 그 뒤를 이을 아들을 제대로 교육시키지 않았다. 결과 그가 죽자 그 아들 소보권은 아버지 영구가 태극전에 있는 것을 싫어하여 빨리 내다가 장사지내려고 하였다. 또 곡을 할 때가 되면 목이 아프다고 곡을 하지 않았다. 그뿐만이 아니라 대머리인 태중대부가 들어와서 곡을 하다가 건이 벗어지자, 대머리가 그대로 들어나자 그 모습이 우스웠던지 막 황제에 오른 소보권은‘독추(禿鶖, 대머리인 새)가 울려고 왔구나!’라고 하면서 크게 웃었다. 아버지의 영구 앞에서 한 짓이었다. 물론 후에 소보권은 황제의 자리에서 쫓겨난다.
형식을 깨버리려는 것은 겉을 싸고 있는 형식 때문에 속에 든 알맹이가 잘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형식을 깨면 알맹이가 보이기 때문에 형식을 깨는 일이 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소보권은 형식을 깨는 데는 일조 했지만 그 속에 알맹이도 없어졌다. 그래서 이는 잘 못된 행동인 것이다. 요즈음 우리 사회에도 형식을 깨버리는 일들이 너무 많이 눈에 띈다. 그러나 돋보여야 할 알맹이는 어디에도 없는 듯하여 마치 위진시대의 철없는 황제모습을 보는 듯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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