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진 시대의 남조 제(齊)나라에서는 황제에 올랐던 사람이 둘이나 쫓겨나고 그 왕조도 소도성이 송(宋)을 대신하여 제(齊)를 세운지 겨우 23년 만에 양(梁)나라에 황제권을 넘겨주어야 했다. 그런데 제나라에서 첫 번째로 황제에 올랐다가 쫓겨난 사람은 울림왕(鬱林王) 소소업(蕭昭業)었고, 제의 두 번째 황제 무제의 손자였다.
소소업은 자기 아버지가 태자 시절에 아버지가 빨리 죽어야 자기가 황제가 빨리 될 수 있다고 생각한 나머지 무당을 시켜서 아버지가 빨리 죽기를 빌기까지 했던 위인이다. 그것이 효험을 보았는지 자기 아버지는 일찍 죽고, 황태손이 되었다가 황제가 된 사람이다.
이왕 그렇게 황제가 되고 싶어 했다면 황제가 된 다음에 정치를 좀 잘 할 것이지 황제가 된 다음에 하는 일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짓으로 밤낮을 지새웠다. 그 몇 가지 예를 들어 보자. 소소업은 의례에 따라서 자기 아버지의 산릉(山陵) 작업을 마치고 오는 길에 우선 미복(微服)으로 갈아입고 놀이를 시작하였다.
미복이란 일반 백성들이 입는 옷으로 보통의 경우에 황제가 민간 시찰을 할 때에 입는다. 그런데, 소소업은 놀이를 하기 위하여 이를 입은 것이다. 물론 놀이를 하기 위하여서는 자기를 따르던 신하들도 관복을 입으면 안 되었기에 모두 미복으로 갈아 입혔다. 이제 놀이를 하기 위하여 상하가 구별이 없게 된 것이다.
그가 한 놀이는 척도(擲塗)라는 것이었는데, 이는 서로 진흙덩어리를 던지고 노는 오락하는 놀이이다. 황제와 신하가 진흙을 뭉쳐서 서로 던져 맞추기를 하면서 맞으면 좋다고 웃었을 터이니 황제의 놀이 치고는 천박스럽기 그지없는 것이었다. 또 도도(睹跳)라는 놀이를 하였는데, 이는 높이뛰기 놀이인 것이다.
그뿐 만아 아니었다. 황실의 의상을 관리하는 부서인 주의(主衣)의 창고에 하(何)황후를 비롯하여 자기가 총애하는 비빈(妃嬪)들을 데리고 들어가서 그곳에 있는 여러 보물(寶物) 그릇을 서로 던져 부수게 하고서 웃고 즐겼다. 한 왕조가 지킬 보물을 놀이로 깨버렸으니, 그에게 가치 있는 것이란 놀이 밖에 없는 셈이었다.
더 가관인 것은 그는 그의 할아버지인 세조가 아끼던 여자인 곽씨(霍氏)를 증(蒸)하기 까지 하였다. 증이란 항렬이 낮은 남자가 항렬이 높은 여자를 간음하는 것을 말하는 것인데, 소소업이 증한 곽씨는 황제인 소소업의 서조모인 것이다. 그리고 그 성을 고쳐서 서(徐)라고 불렀다. 이를 패륜(悖倫)이라는 말로 표현하기에는 어딘가 부족한 것 같다.
그러하더라도 정치는 해야 되는데 백성을 잘 다스릴 생각이란 아예 없는지라 그가 아끼는 신하들에게 맡겨 버렸다. 그 가운데 중서사인(中書舍人)인 기무진지(綦毋珍之)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이든 다 들어 주었다. 그래서 매관매직에 여념이 없었다. 또 서룡구를 후합사인(後閤舍人)으로 삼아서 함장전(含章殿)에 항상 거주하도록 하자, 그는 황륜모(黃綸帽)를 쓰고 초구(貂裘)를 입고 남쪽을 향하여 책상 앞에 앉아 있으면서 황제를 대신하여 칙령에 서명하니, 좌우에서 사람들이 시립(侍立)하고 있어서 황제와 다르지 않았다. 이러한 상태가 되고도 쫓겨나지 않는다면 이상할 일일 것이다.
그런데 요즈음 공직자들이 이 역사를 좀 읽어 보았으면 하는 생각이다. 스스로 나야 울림왕정도일 리가 있겠느냐고 말할 터이지만 요즈음 밝혀지는 공직자들의 비리를 보면 이들이 울림왕과 얼마나 다를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나의 지나친 생각일까? 대소의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울림왕 정도의 권력만 있다면 그보다 더할 사람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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