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때로 출신을 꽤 따진다. 혼인을 할 때도 사람을 채용할 때도 혹은 벗을 사귀거나 거래를 할 때에도 출신을 따지는 일이 간혹 있다. 출신을 안다는 것은 그가 성장한 환경을 보려 함일 것이다. 사람이란 환경에 따라서 성격과 인품이 형성될 수 있기 때문에 어찌 보면 출신을 보려는 것은 당연할지 모른다. 그러나 환경이 나쁘다고 반드시 그 인품이나 능력이 모자라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환경이 나쁘면 발분(發奮)하여 자기 자신을 다듬는 사람도 있고 그러기에 개천에서 용(龍)난다는 말이 있기까지 한 것이 아니겠는가?
중국 역사에서 남북조 시대에 북조(北朝)를 통일한 북위(北魏)가 있다. 물론 중원의 입장에서 보면 야만이라고 일컫던 선비족(鮮卑族)으로 중원지방으로 내려와 사분오열된 북조를 통일하였고, 이 세력은 후에 수(隋)·당(唐)으로 이어져서 중원지역을 지배하는 중심세력이 되었던 것이다. 어떻게 야만에서 이처럼 문화민족이 되었을까? 이러한 역사는 우리에게 양반이라도 자만하지 말고, 가정환경이 나쁘다고 시망하지 않을 수 있는 교육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런데 그것이 어찌 그냥 이룩되었겠는가? 그런데 이런 일을 성공적으로 한 사람은 여인이었다. 문제의 모후인 풍(馮)태후였다. 그녀는 비록 여인이지만 태평성대를 이루려는 조치와 노력을 했다. 북위가 건국하고 100년쯤 지난 시점은 이미 북조를 통일을 이룩한 지 50년이 되는 시기였고 이때에 정권을 쥔 사람은 황제인 문제(文帝)의 어머니인 풍태후였다. 그녀는 부모가 죄를 지어서 노비가 되었다가 황후에 올랐고, 결국 아들 문제까지 성공한 황제로 만든 여인이다. 원래의 신분이 그녀의 성공을 방해하지 못한 것이다.
이 여인이 나라가 제대로 가려면 관리들이 뇌물 받는 것이 없어져야하고 모든 것이 깨끗해 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새로운 조치를 취한다. ‘그동안 관리들에게 봉급을 안 주었으나 이제부터는 먹고 살 봉급을 주겠다. 그러나 절대로 뇌물을 받지 마라.’옛날에는 포(布) 14필을 받거나, 부정하게 뇌물로 24필을 받으면 그 죄는 사형이었는데, 이때에 이르러서 부정하게 뇌물로 1필이라도 받거나 법을 어기면 많고 적음을 가리지 않고 모두 사형에 처하도록 하였다. 정말로 엄격해진 것이다.
그렇다고 이 명령이 떨어졌다고 하여 하루아침에 고쳐지기 어려웠다. 그런데 제일 먼저 걸려 든 사람은 황제의 외척인 이홍지(李洪之)였다. 그는 외척이기에 존귀하고 높은 지위에 올랐지만 정치를 제대로 못하더니 결국 뇌물을 받았다가 첫 번째로 걸렸다. 물론 용서되지 않았고 봐 준 것이 자살하게 한 것이었다.
이렇게 걸려 든 사람이 40여 명이었다. 전에 봉급을 안 받을 때에는 아무렇지도 않던 관행이 이제는 중죄인이 된 것이다. 그래서 봉록을 받는 사람은 두려워하며 몸 둘 바를 몰랐고 뇌물 받는 일은 거의 끊어졌다. 새로운 시대를 연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개혁에는 그럴 듯하게 묘한 말을 가지고 이 개혁을 되돌리려는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회남왕(淮南王) 탁발타(拓跋佗)가 예전처럼 관리에게 봉록을 주지 말자는 것이다. 겉으로는 국가 재정을 말하였지만 실제로는 뇌물을 받는 것이 봉록보다 낫기 때문에 하는 소리였다.
그러나 풍태후에게 개혁을 추진하게 한 고려가 말하였다. ‘배고픔과 추위가 몸을 절박하게 하면 자애로운 어머니도 그 자식을 보호할 수가 없습니다.’라고 하면서 관리에게 봉록을 주고 부정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덕택에 북위의 관료는 깨끗해 졌고, 그 덕택에 오히려 재정적 여유가 생겨서 국방을 튼튼히 하고 이른바 환(鰥)·과(寡)·고(孤)·독(獨)·빈(貧)·융(癃, 질병)에게 재물을 나누어주었다. 복지 정책을 펴게 된 것이다.
아직도 공직자 부정부패가 세계에서 상위에 있다는 우리나라이다. 민간의 부패는 공직자의 부패에서 싹튼다는 점에서 본다면 우리의 태평성대는 아직 요원한 것 같다. 1500년 전에 야만국가라는 북위에서 한 것을 21세기 문명국에서도 못하다니! 문화민족을 자랑할 수 있겠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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