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趙)나라는 전국시대 여러 나라 가운데 가장 북쪽에 있었다. 항상 북방의 호족(胡族)과 부딪쳐야 했다. 남쪽으로 위(魏)나라가 있고, 서쪽에는 강력한 진(秦)이 있고, 동쪽으로는 연(燕)과 제(齊)가 있어서 조가 국력을 신장하려면 북쪽으로 뻗어나갈 수밖에 없었다.
기원전 307년 조(趙)의 무령왕은 북쪽으로 영역을 넓혀 나갔다. 그때까지만 하여도 조의 영역이 아니었던 중산(中山)을 경략하고, 대(代)를 거쳐서 무궁(無窮)에 이르렀다. 말하자면 하북지역을 경략한 셈이다.
그러나 이러한 경험 가운데 조(趙)의 관습을 고쳐야 할 필요가 있었다. 당시에 중국사람들은 치마가 넓고 소매도 넓은 옷을 입었다. 이러한 옷은 농경(農耕)지대에서 생활하기에 편리하도록 고안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옷은 거추장스럽고 특히 전투를 하기에는 불편하였다. 더군다나 상대인 호족(胡族)은 항상 말을 타기 때문에 바지도 짧고 소매도 짧아서 활동하기에 좋았다.
무령왕은 생각하였다. 이제 우리도 활동에 편리한 호복(胡服)을 입어야 하겠다. ‘나의 이러한 결정을 비웃겠지만, 진정으로 현명한 사람이라면 사태의 앞뒤를 잘 살펴 볼 수밖에 없다.’ 특히 지금 차지한 호(胡)지역에 있는 중산 땅은 꼭 지켜서 소유하기 위해 호복(胡服)을 단행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드디어 호복을 단행(斷行)하였다.
조인(趙人)들은 별안간에 전통 복장을 버리고 자기들이 얕잡아 보던 호족(胡族)들의 옷을 입으라니 자존심이 허락지 않았다. 그렇다고 왕의 명령을 지키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러한 사정을 잘 안 무령왕의 숙부이며 공작(公爵)인 조성(趙成)이 조회에 나오지 않았다. 말로는 아프다고 하였지만 사실은 호복의 시행에 반대한다는 표현인 것이다.
무령왕도 그것을 모를 리 없었다. 사람을 시켜서 조성을 설득하였다. ‘나라를 통제하는데 제일 바꿀 수 없는 것은 백성을 이롭게 하는 것입니다. 이 조치는 백성을 이롭게 하는 것이니 따라 주십시오.’ 그러나 조성도 만만치 않았다. ‘중국은 예악(禮樂)을 쓰는 나라여서 이 훌륭한 제도를 사용하고, 먼 곳에 있는 오랑캐들이 와서 배우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오랑캐의 복장을 입게 하다니 말이 안 됩니다.’
무령왕은 그를 다시 설득했다.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 조(趙)나라는 빙 둘러 진(秦)과 연(燕), 제(齊), 한(韓)이 있고 호족으로 동호(東胡)와 누번(樓煩)이 있고, 시대는 바야흐로 약육강식인데, 무엇으로 나라를 지킬 것입니까? 과거를 생각해 보십시오. 오늘 내가 차지한 중산(中山) 사람들이 강력한 제(齊)의 군사를 믿고 우리를 압박했습니다. 그럼에도 먼저 돌아가신 제 아버지 숙후(肅侯)께서는 호복을 부끄럽게 생각하여 입지 않았습니다. 복장을 바꾸지 않는 명분을 지키다가 결국은 호족들에게 부끄러운 일을 당했지요. 복장을 지키는 명분을 지키겠습니까? 아니면 나라를 튼튼히 하여 백성들을 이롭게 할 것입니까?’
무령왕의 숙부인 공자(公子)인 조성도 이 말에 동의 하였다. 바로 호복(胡服)으로 갈아입고 조회에 나왔다. 이제 무령왕의 결단으로 생활하기에 편리한 호복을 입기 시작했고, 이 옷을 입고 군사들이 훈련하게 했다. 말 타기도 좋고 활쏘기도 편리하게 된 것이다.
세계 문명사를 보면 끊임없이 다른 지역의 좋은 문화와 문명을 수용하였다. 때로는 자기 종족의 고유성을 지나치게 고집한 나머지 세계 문명과 단절하고 살아가는 종족이 아직도 있다. 그러나 날로 그 세력은 줄어들어 산속으로 도피하여 들어갈 수밖에 없다. 순수성을 지키면서 산속으로 들어갈 것인지, 외래 문명을 수용해 스스로의 문명을 계발할 것인지는 모두 선택에 달려 있다.
아직도 세상에는 자국민이 세계와의 접촉하는 것에 제한을 두고 있는 나라들이 있다. 말로는 자존심을 내세우고 고유문화를 내세운다. 그러나 세계와 함께 하는 것은 보다 더 큰 성장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이다. 2,300년 전에 조(趙)의 무령왕은 이미 이를 타파했는데, 아직도 울타리를 치고 있는 지도자의 목표는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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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감닷컴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15-04-13 09: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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