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시황이 천하를 순회하다 사구평대(沙丘平臺)에서 죽고, 내부적 갈등 속에서 진(秦)은 더 이상 제국(帝國)을 유지할 수가 없었다. 진에게 망했던 전국시대의 6국(國)이 부활되는 듯이 사방에서 거세게 반란이 일어났다. 결국 이들이 연합하여 초(楚)의 항우를 중심으로 진을 공격하기로 하였다.
군사세력을 가진 사람의 하나인 유방(劉邦)은 서쪽에 있는 진의 도읍인 함양(咸陽)을 향하는데, 진(秦)의 2세 황제 호해(胡亥)는 그가 믿었던 조고에게 죽고, 진시황의 장자 부소(扶蘇)의 아들 영자영(嬴子嬰)이 진왕(秦王)이 되어 있었다. 결국 기원전 206년, 진시황이 전국을 통일한지 15년 만에 영자영은 황제의 옥새와 부신(符信), 부절(符節을 가지고 나와서 유방에게 바치며 항복했다.
전쟁 때에는 어느 시대나 마찬가지지만, 이때에도 역시 대부분의 장수들은 다투어 함양성 안에 들어가 금과 비단과 재물이 가득 쌓인 정부의 창고에서 물건을 나누어 갖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러나 소하만은 달랐다. 그는 진의 승상부(丞相府)로 들어가서 도적(圖籍)부터 챙겼다. 도적은 전국의 지도와 전적(典籍)을 말한다. 이것을 보면 전국에 널려 있는 요새(要塞)와 산물의 많고 적음, 강하고 약한 곳을 다 알 수 있다. 말하자면 보물지도를 가진 셈이었다.
평민출신인 유방도 함양에 들어와서 궁궐을 보니 그 아름다움과 각종 진기한 물건들이 눈에 들어왔다. 또 아름다운 여인들도 많아서 마음속으로 함양에 계속 머물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것을 눈치 챈 번쾌(樊噲)가 유방에게 말하였다.
“패공(沛公, 유방)께서는 천하를 갖고 싶으십니까? 아니면 장차 부잣집 영감 노릇이나 하려고 하십니까? 무릇 이러한 사치한 것들은 모두 진(秦)을 망하게 한 것인데, 이를 무엇에 쓰려고 하십니까? 궁중에 머물지 말고 함양성 밖에 있는 패상(覇上)으로 가십시오.”
그러나 유방은 차마 이 아름다운 것들을 놓고 떠날 수가 없어서 번쾌의 말을 듣지 않았다. 이때에 장량(張良)이 나섰다.
“만약 진 나라가 무도(無道)하지 않았다면 패공께서는 여기에 올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천하 사람들을 위하여 잔혹한 도적들을 제거하시고, 상복을 입고 진 나라 사람들이 고생하고 부모를 잃은 것을 위로 하십시오. 이것이 더 큰 것을 얻는 자산(資産)입니다. 지금 이곳에서 아름다운 것을 가지려 한다면 하(夏)의 포학한 군주인 걸(桀)을 돕는 것입니다. 충성스러운 말은 귀에 거슬리지만 실제로는 이롭고, 독한 약은 입에는 쓰지만 병에는 이롭습니다. 번쾌의 말을 들으십시오.”
결국 유방은 장량의 말을 듣고 함양에서 나와서 패상으로 돌아갔고, 끝내 강한 항우를 물리치고 전국을 통일 할 수 있었다.
유방은 후에 전국을 통일하고 나서 스스로 소하와 장량, 그리고 한신(韓信)은 자기보다 월등히 훌륭하다고 하였다. 소하는 뒷바라지를 잘하였고, 장량을 앉아서 수백 리(里) 밖의 일을 계획하였으며, 수백만 군을 지휘하여 승리로 이끈 사람은 한신이라는 것이었다.
사람은 세상을 살면서 앞에 일어날 일을 알고 싶어 한다. 미래란 아직 오지 않은 일이어서 궁금하여서 많은 사람들은 점을 쳐 본다. 그러나 석가모니는 일찍이 멋진 말을 하였다. 네 과거를 알고 싶으면, 오늘의 너 자신을 보아라. 과거에 네가 행한 결과가 오늘에 나타난 것이다. 미래를 알고 싶으면 오늘 네가 하는 일을 스스로 생각해 보라. 오늘 하는 일의 결과가 미래에 그대로 나타날 것이다.
유방은 먼 미래를 보지 못했지만 소하와 장량을 먼 미래를 보면서 오늘의 일을 처리하여 갔다. 당장 쓰면 없어질 재물보다 보물지도가 더 귀하였던 소하이고, 당장의 호의호식보다 불쌍한 사람들을 구제하고 위로하는 일이 먼저라는 것을 안 사람은 장량이었다. 그 점에서 유방은 행복한 친구를 둔 셈이다. 그렇다면 이쯤해서 자문해 볼 일이다.
미래를 보면서 나를 일깨워 줄 친구가 나에게는 몇이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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