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자치통감에 실려있는 사마광이 정통론에 대한 견해를 밝힌 원문 전체를 해석해 본 것입니다.
“하늘이 많은 백성을 내셨으나, 그 형세로 보면 스스로를 잘 다스릴 수가 없을 것이니 반드시 서로 서로 임금을 추대하여 그들을 다스리게 하였을 것입니다. 만약에 포학한 정치를 금지시키고 해치는 일을 없애서 그들의 생명을 온전하게 보존할 수 있고, 선한 사람에게 상을 주고, 악한 사람에게 벌을 주어 혼란에 이르지 않게 한다면 이러한 사람은 군주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리하여서 삼대(三代) 이전에는 해내(海內)에 있는 제후국들이 어찌 겨우 1만 개뿐이었겠습니까? 인민과 사직을 갖고 있는 사람은 통틀어서 임금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후에 이 1 만개의 나라를 합쳐서 이들의 임금이 된 사람이 법도를 세우고, 호령(號令)을 반포하니, 천하 사람들이 감히 위반하는 사람이 없게 되어서야 마침내 이를 왕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왕으로서의 덕이 이미 쇠퇴하여 버리고 나자 강대한 나라가 여러 제후들을 인솔하여 천자를 높일 수 있는 사람은 이를 패(覇)라고 불리어졌습니다. 그러므로 옛 날부터 천하에 아무런 도(道)가 없었을 때에는 제후들이 힘을 가지고 다투었고 혹은 오랜 동안 왕이 없었던 때도 진실로 또한 많았습니다.
진(秦) 나라는 책을 불사르고 유자(儒者)를 구덩이에 파묻어 버렸지만, 한(漢) 나라가 일어나자 학자들은 비로소 오덕(五德)의 상생론(相生論)과 상승론(相勝論)으로 미루어 보고서 진(秦) 왕조를 윤위(閏位)에 놓고 목(木)과 화(火)의 사이에 놓고서 패권(覇權)을 누렸지만 왕(王)은 아니었다고 하니, 여기에서 올바른 위치에 있었느냐, 끼어 든 위치에 있었느냐 하는 정윤(正閏)의 이론이 일어났습니다.
한 왕조가 전복되기에 이르자, 삼국이 정립(鼎立)하여 대치하게 되었습니다. 진(晉)나라가 통제 능력을 잃게 되자 오호(五胡)가 구름처럼 몰려 와서 소란을 피웠습니다. 남조의 송(宋)나라와 북조의 위(魏)나라가 세워진 이후로는 남쪽과 북쪽이 나뉘어서 통치되었고, 각기 그 나름의 국사(國史)를 갖게 되었고, 서로 배척하고 그들의 역사 속에 상대방을 집어넣지 않고는 남쪽에서는 북쪽을 색노(索虜)라고 하였고, 북쪽에서는 남쪽을 도이(島夷)라고 하였습니다.
주씨(朱氏)가 당(唐) 왕조를 대신하게 되니 사방이 찢기어졌습니다. 그리고 주야(朱邪)가 변경(汴京)에 들어오자 그들을 찬탈자인 궁(窮)과 신(新)에 비교하여 두었습니다. 역법(曆法)과 기년법(紀年法)을 운용하면서 모두 버리고 헤아리어 집어넣지 아니하였으니 이것은 모두 자기를 사사롭게 생각한 치우친 언사였으며, 크게 보고 공정하여 누구에게나 통하는 논리가 아닌 것입니다.
신(臣)은 어리석어 진실로 앞 시대의 정윤(正閏)을 알기에는 부족하지만 가만히 살피건대, 만약에 9주를 합하여 하나로 통합하지 못하였다면 그러한 경우에 모두 천자라는 명칭을 가졌지만 그 실질적인 내용은 없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비록 화하족(華夏族)과 이적(夷狄), 어진 것과 포학한 것, 크고 작은 것, 강하고 약한 것에서는 혹 시대는 다르다고는 하더라도, 요컨대 모두 옛날의 열국(列國)과 다를 것이 없는데 어찌하여 홀로 어느 한 나라만을 높여서 정통왕조라고 말하고 그 나머지는 모두 참람(僭濫)하고 거짓된 것이라고 하겠습니까?
만약에 위로부터 서로 주고받은 것을 가지고 옳다고 하거나 그르다고 한다면 진씨(陳氏)는 어디서부터 받았습니까? 또한 척발씨(拓跋氏)는 어디서 받았습니까? 만약에 중원지방에 자리를 잡았다는 것을 가지고 옳다고 하거나 그르다고 한다면 유(劉), 석(石), 모용(慕容), 부(苻), 요(姚), 혁연(赫連)씨들이 차지했던 영토는 모두 오제와 삼왕이 있었던 옛날의 도읍지였습니다. 만약에 도덕이 있는 것을 가지고 옳다고 하거나 그르다고 한다면 최이(蕞爾)의 나라에도 반드시 훌륭한 임금은 있었을 것이고, 삼대의 말년에는 어찌 사악한 폭군이 없었다는 말입니까? 이러므로 정윤(正閏)의 이론은 옛날부터 오늘날까지 모두 그 뜻이 관통할 수 있어서 확실히 사람들로 하여금 다르게 바꿀 수 없다는 것도 아직은 없습니다.
신(臣)이 지금 서술한 것은 단지 국가가 흥하거나 쇠퇴하는 것을 서술하고, 살아가는 백성들의 즐거움과 괴로움을 저술하려고 하는 것이고,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스스로 선악과 득실을 선택하게 하여 경계하고 권고하려는 것이지, 춘추처럼 포폄(褒貶)의 법을 세우고 어지러운 세상을 다스려서 이를 올바르게 돌려보려는 것은 아닙니다.
정통과 윤통의 시대는 감히 알바는 아니지만, 그러나 이룩한 공로와 업적의 실질적인 내용에 근거하여 이를 말하겠습니다. 주(周)나라, 진(秦)나라, 한(漢)나라, 진(晉)나라, 수(隋)나라, 당(唐)나라는 모두 일찍이 9주를 하나로 섞어서 통일하였습니다. 그리고 왕조를 후손에게 전하여 주었는데, 그 자손들이 비록 미약하여 파천(播遷)하였다고 하더라도 오히려 조종(祖宗)의 업적을 이어받았으므로 회복시킬 희망을 갖고 있었고, 사방에서 그와 더불어 다투는 사람들은 모두 그의 옛날 신하였습니다. 그런 연고로 모두 천자의 명령을 사용하여 그들에게 다가간 것입니다.
그 나머지는 땅의 넓이가 비슷하고, 쌓은 덕도 비슷하며 서로 통일할 수도 없었고, 불리는 이름도 다르지 아니하였으며, 본래 군신관계가 아니었으므로 모두 열국의 시대로 그들을 대우하였고 피차간에 같은 정도로 대적하였다면, 깎아 내리거나 올려 주는 바 없이 거의 사실을 왜곡하지 아니하는 것이 지극히 공정한 기록에 가깝습니다.
천하가 흩어지고 쪼개져 버린 시대라도 세수(歲數)와 사시절과 월일은 없애어서야 사건의 앞뒤를 알 수 없습니다. 한 왕조가 위(魏)나라에 전해지고, 다시 진(晉) 나라가 이를 받았고, 진 왕조는 송(宋) 나라에 전해 주었고, 결국 진(陳) 왕조에 이르렀다가 수(隋) 왕조가 이것을 빼앗았으며 당(唐) 왕조는 후량(後梁)에게 전해 주었고, 결국 후주(後周)에 이르렀다가 다시 우리 위대한 송(宋) 왕조가 이어 받았던 사실에 의거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부득불 위(魏), 송(宋), 제(齊), 양(梁), 진(陳), 후량, 후당(後唐), 후진(後晋), 후한(後漢), 후주의 연호를 취하여 여러 나라에서 일어난 사건을 기록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이것을 높여주고, 저것을 낮추거나, 정통과 윤통 구별한 것은 아닙니다.
소열제(昭烈帝)가 황제였던 촉한 왕조는 비록 중산정왕(中山靖王)의 후예라고 말하기는 하지만 그 가족의 계통이 내려 온지가 멀어서 그 혈통의 세대수와 이름과 직위를 기록할 수 없으니 또한 송(宋)의 고조(高祖)가 초(楚)나라 원왕(元王)의 후예라고 하는 것과 또한 남당(南唐)의 열조(烈祖)가 오(吳)나라 왕인 각(恪)의 후예라고 부르는 것과 비슷하여 옳고 그른 것을 구별하기가 어려우니, 그러므로 감히 광무제(光武帝)와 진(晉) 나라의 원제(元帝)에 비교하여 한 왕조가 남긴 정통을 잇게 할 수는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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