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을 뒤지다 보니 근 12년 전 쯤에 중대신문에 제가 썼던 총장론이 있군요. 옛날에 주장했던 것들이 지금은 어떤지 하는 생각을 하면서 퍼다 실어 봅니다.
<1992.11.12 중대신문>
대학의 총장
대학총장은 한 대학의 최고 책임자이다. 대학이라면 최고의 교육기관이고, 한 사회를 이끌 미래를 책임질 사람을 기르는 곳이다. 그래서 너나 할 것 없이 대학에 입학하려하는데, 그 엄청난 경쟁을 이기고 들어 온 학생들을 교육하는 최고의 책임자이니 비단 대학에서 뿐만아니고 사회로부터도 선망의 대상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므로 그에 따른 명예란 한 기관의 장이란 의미 이상의 것을 가지게 된다. 그는 한 시대의 양심을 대표하는 위치에 있고, 한 시대의 지성을 대표하고 있기에 그가 설령 눈짓을 하거나 큰 목소리를 내지 않아도 정치하는 사람이나 장사하는 사람들이 그 앞에서 머리를 숙이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근래 와서 우리대학에서는 가장 수난을 많이 받는 자리가 이 자리인 것 같은 감이 있다. 왜냐하면 주어진 임기를 채운다는 것조차 힘든 세월이 벌써 10년 정도가 되었으니 말이다. 그것이 시대의 각박 때문인지 적임자를 앉히지 못해서 그런지 판단이 잘 안 간다.
그래도 워낙 지고한 자리이고, 학교의 운명에 막대한 영향을 줄 자리이니 관심이 없을 수 없다. 그래서 그런지 교정의 이곳저곳에서는 후임 총장에 관한 관심이 물 밑으로 흘러다니고 있다. 본인들과 상관된 것인지 아닌지는 몰라도 몇분들이 거론되는 것 같고, 이 소문 때문인지 오직 공부에 전념해야 될 학생조차도 다음 총장의 요건을 유인물로 만들어 내 놓고 있다.
이렇게 민감한 문제에 대하여 말한다는 것은 만용이랄 수도 있다. 그러나 이해득실을 계산하여 입을 다무는 것 보다는 졸견(拙見)이라도 내놓고 이러한 문제에 대하여 토론의 계기를 마련하는 것이 장차를 위해서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어리석음에서 개인에 닥칠 수 있는 허물쯤은 무시하고 몇가지를 제의해 본다.
첫째는 올라 가면서 내려 올 때를 생각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왜냐하면 변화의 원리를 제시한 책인 주역에는 비룡(飛龍) 위에 항룡(亢龍)을 올려 놓고는, 이를 떨어질 일 밖에 없으니 후회함이 있으리라(有悔) 라고 풀이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변화하는 역사 속에서는 자기가 최고라고 생각하는 순간 떨어지는 것이기에 오히려 내려올 준비를 처음부터 한다면 모든 일을 신중하고 겸손하며 정의롭게 처리할 수 있다.
둘째로는 흠이 없어야 한다. 낮은 곳에 있으면 보이지 않을 흠도 하늘에 떠 있으면 보이게 마련이다. 더구나 잘못된 것이 있다 싶으면 앞에 나와서 고쳐줄 생각을 않고 숨어서 흉보다가, 심하면 가장 정의감이 투철한 학생들에게 제보 하고 이를 공개하도록 압력(?)까지 넣는 떳떳치 못한 어른들이 있는 풍토 속에서 개인적인 흠이 있고서야 아무리 막강한 자리라고 한들 견딜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셋째로는 교육자여야 한다. 교육이란 옳은 것은 옳다고 가르치는 것이다. 그런데 힘이 있다고 보이는 각종 이익집단이나 단체들로 부터 들어 오는 수많은 요구나 강청을 듣고 교육적 판단보다 자리 때문에 비굴하게 타협한다면 하루 이틀 자리는 유지된다 하여도 그날로 교육은 죽고 곧이어서 그 자리도 보존치 못하게 된다.
네째로는 실수를 바로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총장의 실수는 학교에 큰 영향을 주므로 되도록 실수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잘못하고 이를 인정하면 두번 다시 동일한 실수는 안 할 수가 있다. 설혹 이로 인하여 자리를 물러나는 일이 있다하여도 학교는 더 이상 실수하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개인이 죽고 학교가 산다면 우리의 선량한 이들이 못 본척은 안한다.
다섯째는 90%를 위해서 일해야 한다. 교내에는 본직 이외의 문제에 관심을 갖는 부류가 10%정도 있다고 본다. 이들은 자기의 본분이나 업무 그리고 책 이야기 대신 다른 사람이야기, 돈 이야기, 자리 이야기로 시간을 보내거나 공적인 일을 사적인 것으로 해석하며 핏대를 낸다. 이들은 겉으로는 학교발전을 설혹 이야기 한다하여도 진정한 관심은 사(私)적인 이해에 있고, 이 이해에 따라 언제든지 옷을 갈아 입는 카멜레온이다. 따라서 이들은 겉으로 힘이 있는 척하지만 본질적으로는 뿌리가 없는 부평초 같은 사람들이니 관심을 가질 필요는 없을 것이다.
큰 눈으로 본다면 우리학교에는 아직도 희망이 있다. 밤을 낮 삼아 도서관을 메우는 제자들이 있고, 훌륭한 제자의 양성이 바로 자기의 발전이라고 여기고 새벽에 한 두시간 먼저 나오거나 혹은 방학도 없이 제자들과 연구실을 지키느라고 재단이나 학교에 불평할 틈이 없는 교수님들이 곳곳에 많다. 그리고 학교정치에는 아무런 관심없이 본분에 충실한 직원들도 많으니까..
이러한 양화들이 악화에게 구축되지 않게 하는 일은 당장 시행해야 할 총장의 일같이 생각되어 이를 하나 더 덧붙인다. 양화로 보이는 이들은 자기 일에 충실하느라고 쓸데 없이 이곳저곳을 다니지 않는다. 그 때문에 보통으로는 눈에 잘 안 띄이므로 의지를 갖고 찾아 나아가야 한다. 이러한 교수, 직원, 학생들을 찾아내어 표양하려는 의지를 보인다면 대학은 태평성대의 문턱에 있게 된다. 아마 그렇게 한다는 그 소문만 있어도 우리 대학은 지금의 다섯배는 빨리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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