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치통감 20권째를 다 읽고나니 그 다음이 기다려져 일이 손에 안잡힙니다.
>언제 6월까지 기다리나요?! 그때까지 기다리다가는 목 디스크 발생하여 병원 입원해야 할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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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에 삼화출판사 정문 앞에 텐트치고 "자치통감 하루빨리 출간해 주십사" 현수막 내걸고 촛불 시위라도 들어가야 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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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에 한꺼번에 여러권 내놓으시는것 보다는 한권이라도 좋으니 앞당겨서 출간좀 해주시면 목마른 독자들 갈증이 좀 풀릴것 같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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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제 사정이 사막에서 목말라 말라져 시들어가는 것 처럼 인생에 낙이 없습니다. 제발좀 한권이라도 좋으니 출간좀 해주십사 하고 염치불구하고 청을 드립니다. 출판사 사장님 이하 임직원 여러분들 항상 강녕하시길 기원합니다.
***관심 고맙습니다. 불철 주야로 교정에 매 달리고 있습니다. 여담을 하나 말씀드리겠습니다. 학국학중앙연구원에 계시던 정구복(낙암)교수님이 정년한 뒤에 북경에 가 계시면서 까페를 열고 나보고 들어 오라고 하였습니다. 이런 저런 글을 올리는데, 오늘 내가 이런 글을 올렸습니다. 제목은 자치통감과 삼국사기입니다.
1주일에 한번 몇몇 사람들과 자치통감 강독을 하는데, 이미 斷續이 있었지만 이미 30년이 된 일이었다. 지난 수요일에 자치통감 권278 수기2를 읽다가 고구려 영양왕이 수를 공격한 기사를 읽었다. 내용은 '高麗王元帥靺鞨之衆萬餘寇遼西 營州總管韋沖擊走之'였다. 해석이야 간단하였다. 고구려를 고려라고 표기하는 곳이 많으므로 고려는 고구려이고, 元은 영양왕의 이름인 고원을 말하는 것이므로 '고구려왕인 고원이 말갈의 무리 1만여명을 인솔하고 요서를 노략질하였는데, 영주총관인 위충이 이를 쳐서 도망하게 하였다.'였다.
이를 읽다가 그러면 삼국사기에서는 어떻게 표현했는가가 벼란간 궁금하여 찾아 보았다. 삼국사기 권 20 고구려본기8, 9년조에 이 내용이 기록되었다. 원문을 보면 '王率靺鞨之衆萬餘侵遼西 營州總管韋沖擊退之'였다. 고친 글자는 고구려 본기이므로 고려와 영양왕의 이름을 뺐고, 帥를 率로 바꾸고, 寇를 侵으로 바꾼 것 말고는 문장의 순서와 단어가 그대로였다.
帥를 率로 바꾼 것은 의미의 차이는 전혀 없지만, 寇를 侵으로 바꾼 것은 노략질하다는 말을 침략하였다로 바꾼 정도이다. 고구려 본기는 고구려 입장에서 쓰는 것인데, 고구려 입장에서도 요서를 공격한 것이 '침략'으로 인식하였다는 말인가? 또 수의 영주총관이 고구려를 물리친 것을 走 대신에 退를 썼는데, 달아나다 도망하다는 말을 물리쳤다는 정도로 표현을 바꾼것 뿐이다.
나는 '중국사람의 생각으로는 영양왕의 요서 공격을 노략질이라고 했더라도, 고구려 입장에서는 征이나 伐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하여도 최소한 攻이나 擊 정도로 바꾸어 주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였다. 그리고 중국에서 고구려를 擊走라고 하여도 고구려 입장에서는 몇마디 더 붙이어 영주총관 위충이 '굳게 막아서 (固抵) 돌아왔다(還)' 정도로 해서 고구려를 주동적 위치로 놓고 서술해야 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김부식이 왜 그랬을까?
역사에서 한 글자가 얼마나 중요한 것을 모른 것인가? 역사 고구려 본기를 쓰면서 고구려 입장을 고려하지 않은 것인가? 아니면 그냥 베겨 쓴 것인가? 착잡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었다.
이러한 논의를 자치통감 행간읽기<자행기>에서 다루어 보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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