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2006년 11월 20일자 중대신문의 요청으로 쓴 글입니다.
동북공정, 권력과 이념에 지배받는 역사
떠오르는 중국, 21세기 패권주의
중대신문 caunews@cauon.net
중국에서 ‘동북 변경지역의 역사와 현상에 관한 일련의 연구 작업’이라는 대대적인 연구프로젝트를 진행하여 왔다. 연구프로젝트야 어느 것이든지 가능한 것이지만 특히 우리나라에서 몇 년 전부터 이 작업을 ‘동북공정(東北工程)’이라고 줄여 부르면서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중국의 동북공정은 중국사회과학원에 속한 변강사지연구중심(邊疆史地硏究中心)이라는 연구기관과 중국동북지역에 위치한 지린성[吉林省]·랴오닝성[遼寧省]·헤이룽장성[黑龍江省] 세 성이 합동으로 주관하여 2002년 2월부터 시작하여 2007년 1월까지 5년간 연구를 진행하도록 되어 있다. 여기에 투입되는 연구비는 5년간 런민비(人民幣)로 20억 위앤(元)이니 우리 돈으로 계산하면 약 3,000억 원이 된다.
이 연구 작업은 크게 기초연구과제, 응용연구, 번역과제, 문서관리국 과제 등 네 부분으로 나뉘어 있으며, 2002년에 모두 67개의 과제가 선정되었고, 2005년 9월에 간추린 연구 결과가 변강사지 홈페이지에 일부 발표되기도 하였다.
연구프로젝트의 명칭으로 보면 중국 동북지역의 역사와 지리에 대한 연구 작업으로 보이고 그 자체를 문제 삼을 것은 없지만, 알려진 대로 이 가운데는 현재 중국 동북지역을 강역으로 갖고 있었던 과거의 고구려, 발해의 역사를 비롯한 일련의 작업을 통하여 고구려는 중국의 지방정권이었다는 점을 주장하는 것 때문에 우리사회에서 깊은 관심을 갖는 것이다.
사실 역사연구야 과거 사실 자체를 밝히는 작업이므로 어떤 사람이 어떤 역사를 연구하더라도 그것은 그 사람의 자유에 속한 것이다. 그러한 연구 작업의 결과는 보편적으로 인간의 발전과 인류의 평화에 기여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역사연구는 정치적 권력뿐만 아니라 사상과 이념, 사회세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어야 공정하고 가치 있는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
그런데 중국은 1949년에 건국하면서 맑스주의를 국가건설 이념으로 받아 들였고 이 이념은 중국의 정치뿐만 아니고 사회의 모든 분야 학술의 분야까지 지배하기 때문에 역사연구도 이념의 지휘를 받는 연구인 것이다. 이것은 역사적인 사실을 빌어서 정치적인 이념의 정당성을 증명하려 드는 것이다. 이처럼 중국에서는 역사학을 이념과 체제를 유지하는데 이용하려는 경향을 짙게 갖고 있으므로 이번의 동북공정도 그들의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정치행위라고 볼 수 있다.
그것은 동북공정에서 제시한의 목표를 보면 알 수 있는데, 그 가운데 첫 번째가 국가의 장기적인 치안과 국가의 통일, 단결, 변경지역의 안정을 위한 정치의식을 고취하는 것이며, 두 번째가 다민족 통일 국가라는 대세(大勢)를 인식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러한 목표를 가지고 역사를 연구한다는 것은 진정한 역사학자는 전혀 동의할 수 없다.
역사가는 과거의 진실 자체가 인류의 발전과 평화에 기여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역사가 되풀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과거에 있었던 사실은 미래를 조망하고, 시행착오를 줄이는데 크게 기여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역사가는 사실대로 기록하는 것을 사명으로 알아 왔고 그래서 권력을 가진 자도 역사를 두려워하여 각고의 노력을 한다.
그러나 많은 권력자는 역사를 두려워하기 보다는 역사가를 권력으로 지배하여 자기의 악행을 기록하지 않거나 적당히 미화하는 곡필(曲筆)을 하도록 강요하였다. 이렇게 권력의 지배아래에 있는 역사가의 기록은 곡필이기 때문에 돈과 직위를 얻을지 몰라도 역사가로서의 생명을 갖지 못한다. 그래서 역사가는 진정한 역사가와 권력의 시녀인 역사가로 나뉜다.
역사가를 지배하고 싶은 권력이 강하면 강할수록 시녀화한 역사가는 많겠지만 이러한 경우에도 진정한 역사가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목숨을 내놓고 진실을 기록하는 처절한 역사가가 존재하였고, 후세에 그 기록이 들어날 때에는 그 명성이 만세를 빛난다.
예컨대 ‘사기(史記)’를 쓴 사마천은 책을 다 써 놓고 세상에 밝히지 말고 ‘금고석실(金庫石室)’에 넣어 두라고 하였다. 당시에 무제(武帝)는 자신에 대한 비판을 막기 위하여 정부의 정책을 듣고 입을 삐죽 내밀기만 하여도 배속으로 비난한 것으로 치부한다는 ‘반순복비(反脣腹誹)’의 죄라는 조목까지 만들었다. 그런데 사마천은 이 사실을 기록하였으니 발견되면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운 형편이었으므로 결국 무제가 죽은 뒤에 이 책이 공개되기를 바라면서 당분간은 금고석실에 두라고 한 것이다.
권력이란 국가 권력만이 아니고 이 세상에 힘이 있다는 세력에 대하여서도 진정한 역사가는 자유롭고자 하였다. 명대의 이지(李贄)라는 사람은 거대한 세상인심에 대항하여 역사를 비평하여 글을 써 놓고, 이를 숨겨두어야 할 책이라는 의미로 ‘장서(藏書)’라고 하였고, 태워버릴 책이라는 뜻으로 ‘분서(焚書)’라고 한 것이 바로 역사가의 자유정신이었다.
국가가 역사서술 자체를 지배하려고 하게 되지만 이들처럼 진정한 역사가들은 끊임없이 권력자의 눈에 띄지 않게 기록해 놓는 순진(純眞)정신을 가지고 목숨을 걸고 사실을 기록한다. 그렇다면 지금도 중국에도 당국의 눈에 띄지 않게 사실을 제대로 연구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돈을 주면서 곡필(曲筆)하도록 유도하는 동북공정 같은 연구 작업에 참여하는 것은 역사가로서의 생명이 끊어지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이러한 진정한 역사가는 동북공정에 참여하지 않았을 것이다.
돈과 권력의 시녀가 되어 곡필을 서슴치 않은 사이비 역사가는 많이 있기 때문에 동북공정에 참여하는 역사가가 있지만 돈 준 사람의 목표에 충실하게 쓰기 위하여 왜곡된 이들의 글은 얼마 지난 다음에는 독자로부터 외면을 당하고 쓰레기 속으로 사라지는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동북공정에서 더 많은 돈을 퍼 붇더라도 얼마 지난 다음에는 아무도 거들 떠 보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무시해도 좋다.
다만 경계해야 할 문제는 이 시녀화한 연구 결과를 권력자가 교육에 적용시키려고 하는 것이다. 권력에 의하여 교육받는 모든 사람이 다 역사학자가 아니기 때문에 이를 비판적으로 수용하기가 힘들고 잘 못된 역사를 진실로 믿게 된다. 이 문제는 한·중 양국 국민 사이에는 역사인식의 오해를 낳고, 이로 인한 분규와 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으므로 국제적으로도 서로 주의해야 할 것인데, 중국에서는 이를 자행하는 것이다.
더욱이 점차 지구촌 사회가 되는 현대에 있어서 앞으로 끊임없이 우호 협력관계를 유지해야한다고 본다면 동북공정에 의한 연구 결과의 교육은 역사를 역행하는 처사이다. 그러므로 이 문제에 대하여서는 동북아시아의 평화적 안정을 위하여 정부의 외교적 노력이 긴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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