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상권 66페이지에 송양공의 홍수싸움은 노희공22년(BC638)아닌지요.
>2. 상권 133~134페이지에 '자초'는 영정의 부친 영이인이 아닌지요.
>3. 조심스러운 질문입니다만 교수님께서는 사마광을 비롯한 모든 평론자들(양웅, 사마천 등)의 평가에 모두 반대입장(또는 평가절하)이신것으로 느껴지는데요. 그러신지요.
>(공감하는 부분도 있지만 저로서는 많이 거슬려서요. 죄송합니다만 그리 논리적이거나 타당한 견해이신것 같지도 않구요. 외람됩니다만 사마광의 견해를 오해하신 부분도 보이구요. 혹시 교수님께서 쓰신 책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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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견 감사합니다.
1.의 문제는 오타입니다. 그 해가ㅏ 주양왕 14년이어서 착오를 하였던 것 같습니다. 그 사건은 주양왕 14년, 노 희공 22년(기원전 638년)의 일입니다.
2. 진의 장양왕(기원전 281~247)은 진장왕이라고도 합니다. 본명은 이인이고 후에 이름을 고처서 초라고 했지요. 그래서 혹은 그를 자초라고 합니다. 진의 효문왕과 하희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인데 이사람이 진시황 즉 영정의 아버지입니다. 도표도 그리 되어 있지요.
3. 아주 중요한 질문을 하셨군요.
역사 사실은 하나인데, 이것을 보는 시각은 여럿입니다. 그에 대한 평가가 언제나 같다면 역사가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서 과거 사실을 보는 눈이 다르게 마련입니다, 대체로 과거 사람이 보는 것과 같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역사는 언제나 새롭게 지금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자치통감에서 평론한 분들을 평가 절하한 것은 아닙니다. 내 뜻은 그분들은 그분들이 살고 있던 시대, 그분들이 갖고 있던 생각, 사상으로 과거 사실을 보고 평가한 것입니다. 그래서 오히려 그분들의 평론을 통하여 그 시대를 좀더 잘 알 수 있습니다.
사마광은 저도 아주 존경합니다. 당년하지요. 그러나 그분과 내가 살고 있는 시대는 1천년의 차이가 있습니다. 그분은 유가사상으로 국가를 운영하려고 한 분이었다면 지금의 시각으로 볼 때 유가적 시각을 벗어난다면 그 역사 사실은 다르게 보입니다.
그래서 나는 시대에 따라서 달리 보이는 과거의 역사를 말하려고 한 것입니다. 그것을 비난으로 봐서는 안 됩니다. 그것을 혹 내가 과거의 위대한 역사가를 비난한 것으로 보셨다면 미안합니다.
물론 말씀 하신 분의 견해로 역사사실을 또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것을 정리해 보시는 것도 역사를 공부하시는데 도움이 될 듯합니다. 나는 어떤 사상 하나로 역사를 재단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그 당시의 여러가지 상황을 다 고려하여 역사사실을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하여간 의견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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